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걸프 전쟁 (문단 편집) === 지상전역 돌입: 사막의 기병도 작전 === 사막의 폭풍 작전 중 공중 [[폭격]]이 주가 된 3단계가 끝나고, 마지막 4단계로 넘어가자 다국적군은 [[2월 24일]]부터 "사막의 기병도(Desert Sabre)"라는 작전명 아래 본격적으로 지상전에 돌입하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DesertStormMap_v2.svg.png|width=2000]]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걸프 전쟁/다국적군 편제)]'''. 주공은 영국 제1기갑사단, 사령부 예비인 제1기병사단까지 배속받아 총 5개 기갑/기계화 사단을 거느린 미 7군단이었으며, 기동력이 강한 제18공수군단이 수차례의 강습 작전으로 치고 들어가 좌측방을 엄호했다. 미 육군 제1기갑사단 2여단전투단을 배속받은 해병대는 다국적군이 쿠웨이트 방면으로 침공할 것처럼 기만 목적의 조공 작전을 수행하여 이라크군을 끌어들인다. 다국적군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대기하고 있던 30만의 지상 병력과 장비를 수백 km 기동시켜 이라크를 가로질러 쿠웨이트를 포위하게 했고, 뒤가 막혀 도망치던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를 성공적으로 포위, 섬멸하였다. 이 데저트 세이버 작전(Operation Desert Saber)의 핵심인 우회기동은 [[헤일 메리]] 기동작전(Hail Mary Play)로 이름 붙여졌는데 고대로부터 이어진 불후의 전술인 [[망치와 모루 전술]]이 현대전에서 작전적인 차원으로 적용된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가 되었다. 이름의 유래가 된 [[미식축구]]의 헤일 메리 패스와 마찬가지로 이 작전 역시 [[군단]]을 넘어 [[집단군]] 수준의 병력을 수백km 기동시키는 대규모 작전인지라, 이라크군과 직접 맞붙는 것 이상으로 난이도가 높은 일이었다. 실제로 이 작전 준비 및 기동 중에 사고로 잃은 병력이 이라크군과의 교전으로 인한 전사자보다 더 많았다. 게다가 적국의 내로 크게 침투하여 우회하는 기동 특성상 매우 위험한 작전이었으며 특히 쿠웨이트 북쪽으로 포위한 부대의 경우 서남쪽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출발하여 기동거리도 엄청났지만 측면이 노출되어 있는데다 비록 이라크와 사이가 좋지 않은 데다 전쟁 피해 복구에 열중해야 하는 관계로 미국과 적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지만 엄연히 적성 국가에 속하는 [[이란]]을 후방에 둔 형세가 된다. 이란 입장에서 이를 곱게 볼 리 없는지라 상황에 따라 개입할지도 모르는 불안 요소였다. 헤일 메리 플레이란 이름은 정말 적절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파일:attachment/3_AD_Iraq.jpg|width=100%]] '''진군하는 미 육군 제3기갑사단.''' 지상전역의 핵심 표적이었던 공화국 수비대와 이라크 육군 정예사단들은 헤일 메리 기동 막판에 포착됐다. 미 육군 제2기갑사단과 제1보병사단은 알부사야(Al Busayyah) 인근 도로교차점에 설정된 목표 "노포크"(Objective Norfolk)에서 이라크 육군 제52전차사단과 공화국 수비대 타와칼나 기계화사단을 중핵으로 한 대규모 기갑부대와 조우했고, 7군단 최좌익의 제1기갑사단 역시 [[바스라]] 서쪽 50마일 근방에서 공화국 수비대 [[메디나]] 전차사단과 맞닥트렸다. 양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쿠르스크 전투#s-5.5|프로호로프카 대 전차전]] 이래 최대 규모의 전차전으로 일컬어지는 노포크 전투(Battle of Norfolk)에서 미 육군은 550대의 전차를 격파했으며, 2기갑사단/1보병사단 좌우측방에서 병진하던 미 제3기갑사단과 영국군 제1기갑사단도 각각 300대가 넘는 전차 및 장갑차량 파괴/노획 전과를 올렸다. 이때 양군의 선봉이 접촉하여 벌어진 '73 이스팅 전투(Battle of 73 Easting)'에서 단 9대의 전차만으로 이라크 전차 80여 대를 무찌르는 눈부신 전공을 세워 은성무공훈장을 수여받은 기갑기병중대장이 바로 [[허버트 맥매스터]]이다. 제1기갑사단 역시 이라크군에 186대에 달하는 전차 손실을 가하며 메디나 능선 전투(Battle of Medina Ridge)를 압도적인 승리로 종결지었다. [[파일:attachment/걸프 전쟁/t72m1destroyed.jpg|width=890]] [[AH-64]]의 [[AGM-114|헬파이어 미사일]]에 피격된 함무라비 사단 소속 [[T-72]]. 1991년 3월 2일 당시 미군의 기갑사단은 주로 M1A1(HA) 에이브람스를 운용했는데, 이는 [[열화우라늄]] [[날탄]]인 M829A1과 함께 [[1988년]]부터 배치되었고 당대 최고의 화력과 방호력을 자랑하였다. [[T-72]]를 두려워하여 지휘관들이 야전에서 급히 [[열화우라늄]] 장갑과 포탄으로 보강하였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기존의 M1A1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조한 사례도 있긴 하지만, 야전 개수가 아니라 제대로 된 공장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다만 지휘관들의 성화 속에 상당한 속도로 빠른 시일 내에 교체가 된 것은 사실이다. 반면 이라크의 [[T-72]]는 '''1970년대에 개발된 수출용 날탄'''을 사용하여 공격력이 [[T-62]] 전차의 115mm 활강포보다 별로 나을 게 없는 수준이었으며 때문에 에이브람스 전차들에게 말 그대로 녹아내렸다. 그리고 미 공군과 육군의 [[A-10]]와 [[AH-64]] 등도 전장에 투입되어 함무라비 사단의 전차를 대부분 파괴했으며, 함무라비 외에도 메디나 사단, 타왈카나 사단 등 이라크 공화국수비대 소속 정예사단들을 거의 무력화했다. 반면에 이 전투에서 미군 피해는 전사 2명에 부상 30명뿐이었다. 이라크군은 나름 8년 간 치렀던 [[이란-이라크 전쟁]]의 교훈으로 "대포밥 전술"로 미군의 진격을 어떻게든 막아보고자 했다. "대포밥 전술"은 2선급 전력을 최일선에 내세워서 적이 2선급 전력으로 이루어진 방어선을 돌파하느라 전력과 보급이 소모되면 그때 정예 부대로 반격해 격퇴한다는 개념이었다. 물론 이란군도 우세한 병력과 기갑전력으로 이라크의 방어선을 돌파하려 했지만 워낙 견고한지라 피해만 커졌고, 돌파하는 데 성공해도 [[공세종말점]]에 도달해 진격이 제한되게 마련이었다. 이라크군이 사막 전체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우회공격을 시도해 봤으나 보급 부족으로 부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이것도 포기했다. 따라서 이라크는 미군이 화력으로 방어선에 구멍을 뚫고 기갑부대를 투입하여 돌파할 것이며, 이란군보다 난이도가 높긴 하겠지만 방어는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미군은 이라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대응했다. 군단급 병력들을 4백여km라는 어마어마한 거리로 우회할 수 있는 풍부한 보급능력과 [[GPS]] 같은 첨단기술을 이용해 사막에서 전혀 낙오되지 않는 기염을 토해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이라크군은 포위를 피하기 위해 퇴각을 개시했으나 그 결과 오히려 미군의 화력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폭격과 포격, 전선을 돌파한 미군의 공격으로 대부분의 중장비를 잃었다.[[http://www.ddanzi.com/ddanziNews/561555604|#]] || [youtube(ScAjmKQefcA)] || || 사막의 기병도 작전 당시 촬영된 영상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